스레드에 2026년 1월 19일 남긴 글을 토대로 작성하였습니다.
며칠 전 청주로 혼자 여행을 다녀왔다. 갔던 곳 중 하나가 충청북도청이었는데 김예슬 작가가 쓴 <대전 건축 여행>에 나왔던 부분이라 확인차 가보고 싶었다. 책에서 봤던 대로 80년대에 유행했던 연갈색 벽돌의 외벽과 창틀이 눈에 띄었고, 원래 자리가 연못이었다는 걸 보여주려는 건지 조그만 연못과 나무가 있었다. 어릴 적 이런 건물을 보면 왠지 위엄있고, 멋있어 보이던데, 지금 생각하니 왜 그랬을까 싶다. 어른에 대한 동경심 때문일까? 살펴보니 책에서 소개되었던 청사는 옛 건물이고, 뒤쪽에 새로 건물을 지어 업무를 보고 있었다. 그 건물과 의회동 건물은 내부 공사 중이라 들어갈 수 없었다. 의회동 쪽 광장은 ‘문화 광장 815’로, 옛 청사는 그림책 정원으로 바뀌는 중이었다. 얼마나 좋게 바뀔지 기대되지만, 역사성을 없애는 게 아닐지 걱정도 된다.
도청 건물 주변을 둘러싸던 담장이 없었는데 몇십 년 전부터 유행하던 담장 없애기 운동이 여기까지 퍼진 모양이다. 없앤 자리에 조그만 공원 혹은 정원을 가꾸어 사람이 오가도록 만드는데, 그 자리에 사람들의 집회가 늘었다는 소식을 2년 전에 들었다.
국민의힘 소속 김영환 충북지사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충북도청 쌈지 광장이 같은 당 윤석열 대통령 파면을 요구하는 시위 장소로 애용되고 있다. (중략) 쌈지 광장은 김 지사가 지난 2022년 7월 취임하면서 시작한 도청 개방 프로젝트 중 하나이다. 충북도는 상당공원과 연결된 도청 서문 쪽 울타리를 허물고 주차장은 없앴다. 정문 쪽 정원에 있던 연못도 메우고 잔디광장을 만들었다. 울타리가 없어지면서 인도 폭이 기존 3.5m에서 7m로 넓어졌다. 충북도는 이에 대해 "보행자가 편하게 이동할 수 있고, 수목으로 가려져 보이지 않던 도청 건물을 시원하게 드러내며 개방감을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중략) 쌈지 광장이 12·3비상계엄이 선포되자 시국 집회 단골 장소가 됐다. 예전에도 정문과 서문 앞에서 각종 단체의 기자회견과 집회가 열렸는데 당시 인도 폭이 협소해 참여 인원이 한정됐었다. 지금은 참여 인원에 구애받지 않을 정도로 장소가 넓어져 대규모 집회 개최가 가능하게 됐다. - <김영환 도청 쌈지공원 만들었더니… 탄핵시위 중심지로> (충청투데이, 2024.12.23.)
담장이 없으니, 사람이 모이기 쉬워졌고, 자연스레 집회하기 좋은 곳이 되었다. 일방적인 권위대신 시민의 참여가 늘어났으니 좋은 변화다.
우리에게 광장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시민이 모여 의견을 나눈다는 사전적 의미를 넘어 많은 이가 국제 스포츠 경기에 나간 국가대표팀을 응원하고, 선거로 얻은 권력을 사적으로 남용한 지도자를 물러나라고 외쳤던 곳이다. 서울의 광화문 광장, 대구의 동성로 28광장 등 도시마다 시민들이 애용하는 광장이 하나씩 있다. 광장의 중요성을 다룬 글은 찾아보면 많다. 도시의 미관, 시민의 소통 창구, 한 나라의 역사적 상징 등등 사람이 사는 마을에 중심지가 있고, 거기에 꼭 모여서 이야기를 나눈다는 진리를 길고 아름답게 표현했달까?
이탈리아 도시건축학자 프랑코 만쿠조는 저서 <광장>에서 ‘광장은 스스로 정체성을 갖기보다 그곳을 채우는 사람들에 의해 규정된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시민의 일상을 담는 일상 속 쉼터가 돼야 민주적인 광장을 만들 수 있다고 조언한다. - <“광장을 돌려주세요”…다시 쓰는 ‘광장 사용설명서’> (경향신문, 2019.8.28.)
우리나라는 특히 근현대사에 있어 광장이 지니는 의미가 크다.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부터 1980년대에 이르러 꽃피는 민주화 운동, 최근에 있었던 촛불 혁명까지, 사회가 크나큰 위기를 맞이할 때마다 사람들은 한데 모여 그 굴곡진 시간을 함께 극복해왔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늘 광장이 있었다. 어쩌면 광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고 또 일어나고 있는지를 보는 것만으로 우리나라 사회사의 흐름과 현주소를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 조온윤 <우리는 광장에서 연결된다> (인문360, 2020.2.27.)
지금 사람들은 온라인으로 모이고, 광장을 찾는 이는 드물다. 지나가는 이, 뛰노는 이, 머물며 쉬는 이가 전부다. 그렇다고 없애자는 사람은 없다. 사람이 사는 이상 언젠가 들를 곳이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충북도청의 쌈지공원과 문화 광장도 모두에게 열린 공간이 되어간다. 위엄있는 건물 주위로 모인 사람이 쉬어가거나 목소리를 내는 평화로운 자리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