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에 찍은 동아백화점 쇼핑점
나에게 어릴적 백화점은 신기함 그 자체였다. 들어서자 1층 매장의 화장품과 향수 향기, 다양한 남녀 옷, 지하 식품 매장에서 파는 식재료와 먹거리 등이 눈과 코를 뗄 수 없게 만든다. 높은 층에 올라가면 어린이 뮤지컬을 볼 수 있는 작은 극장, 갤러리, 전망대도 있었다. 지금도 거기에 있는 팝업 스토어(한정 판매 가게), 관광 상품을 파는 가게 등을 들르면 괜히 흐뭇해진다.
백화점은 예전부터 손님을 끌어모으기 위해 다양한 전시나 공연 등을 열었다. 신문에 실렸던 전시, 공연 안내를 보면 어느 백화점 몇 층에서 무엇이 열린다는 내용이 자주 나온다.
마산·창원지역 백화점에 따르면 여름방학 특별기획으로 새 전시회와 세계 희귀 곤충 전시회, 한국의 나방전을 진행하고 있다. 롯데백화점 창원점은 '방학특집 한국 새 전시회'를 11일까지 개최한다. 1층 샤롯데 광장에서 열리는 이번 행사에는 공작비둘기·금화조·모란앵무 등 15조의 새가 전시돼 있다. 11일까지 신세계 마산점 6층 가고 파훌에서 열리는 희귀곤충 전시회에서는 '세계 희귀곤충 표본 전시', '곤충 유충 생태관'이 진행되고, '곤충 교실'을 통해 표본 만드는 법, 곤충의 세계를 강의한다. 대우 백화점 8층 갤러리에서 13일까지 열리는 '국내 최초 한국의 나방전'에는 나비와 나방 비교전, 외국나방관, 한국나방과 나비 생태 자료관 등이 준비돼 있다. - <도내 백화점 새·곤충 등 전시회 잇따라> (경남도민일보, 2002.8.10.)
롯데백화점 대전점은 19일 오후 2시 백화점 3층 스카이 파크에서 '가을 빛 추억 음악회'를 개최한다. '가을의 낭만과 추억'을 테마로 진행하는 이번 음악회는 색소폰연주와 혼성통기타 그룹의 라이브연주, 클래식연주 펼쳐져 고객들에게 가을의 여유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마련된다. 음악회와 함께 사랑의 자물쇠 무료 증정 이벤트와 가을을 느낄 수 있는 고구마, 군밤도 맛 볼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된다. 백화점 관계자는 "바쁜 일상에서 잠시나마 가을의 추억과 낭만을 즐길 수 있도록 음악회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 <롯데백화점 19일 ‘가을 빛 추억 음악회’> (충청투데이, 2012.10.17)
문화센터도 마찬가지다. 1984년 신세계 본점을 시작으로 각 백화점마다 열렸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중년층에서 젊은 직장인까지 대상과 배울 수 있는 과목이 다양해졌다.
프로그램 내용을 들여다보면 1980~90년대 백화점 문화센터는 재봉틀, 공예, 노래교실, 미술 등 4050 주부들을 위한 취미 강의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2000년대 중반 남성 수강생이 늘면서 이스라엘 격투기, 루어 낚시, 탈모·전립선 질환을 이겨내는 방법 등 남성 수강생을 겨냥한 강의들도 선보였다. 고령화 사회가 화두가 된 2010년부터 큰손으로 떠오른 노인 세대를 잡기 위한 실버 전용 강의도 쏟아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문화센터는 중년 주부들의 전유물이었다. 그러다 MZ세대가 주인공으로 떠오른 건 2018년. 주 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되면서부터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퇴근 후 저녁이 있는 삶을 즐기려 문센을 찾는 2030 직장인이 크게 늘면서 수제 맥주 만들기, 피아노 배우기 등 '워라밸(Work & Life Balance)'에 초점을 맞춘 강의가 인기를 끌었다. - <트로트 부르던 백화점 문화센터는 어떻게 'MZ세대 놀이터' 됐나> (한국일보, 2023.2.25.)
이렇게 백화점은 단순히 다양한 물건을 파는 걸 넘어 문화를 전달하는 역할까지 수행하며, 각 지역의 사랑방이자 사회 공헌이라는 명목상의 목표까지 이루고 있다. 물론 오가는 손님과 벌어둔 돈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다.
최근 인구 감소, 온라인 쇼핑몰의 활성화, 구매 습관의 변화로 백화점의 숫자가 눈에 띄게 줄고 있다. 2010년대에 미국, 중국, 일본에서 백화점이 폐점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지만, 한국은 브랜드에게 수수료를 받는 방식으로 운영하는데다 체험형 매장, 아울렛 운영 등으로 변화에 잘 대응한다는 호평도 받았다.
‘미국 메이시스백화점 점포 폐점 계획 발표, 일본 미쓰코시 일부 지역 철수 결정, 중국 백화점 실적 악화.’
해외 백화점업계에서 나오고 있는 뉴스다. 경쟁자에 밀려 점포 문을 줄줄이 닫고 있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한국 백화점들은 다르다. 불황에도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신세계와 현대백화점의 3분기 매출은 두 자릿수 늘었다. 신규 출점이 적었던 롯데백화점도 소폭이지만 성장했다. 발빠른 체험형 매장으로의 변신과 아울렛 등을 통한 사업 다각화, 위기에 강한 구조 등이 그 비결로 꼽힌다. - <줄폐점하는 미국·중국·일본 백화점은 궁금하다…왜 한국 백화점만 잘 나가는거죠?> (한국경제, 2016. 10.16.)
하지만 한국도 그 흐름을 피할 수 없었다. 롯데백화점이 낮은 매출을 기록한 점포를 정리하고, 매각하거나 다른 용도로 변경을 추진한다는 기사가 나왔다.
롯데백화점은 관악점·상인점·분당점·일산점·대구점 등 매출 하위권 10여 개 점포에 대해 구조조정을 검토하고 있다. 롯데백화점 32개 점포 가운데 매출 전국 꼴찌인 마산점은 지난 6월 폐점을 결정했다. 센텀시티점은 최근 매각을 추진한다고 공개했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저실적 점포를 매각, 폐점, 추가개발 등 다각도로 정리하는 방안을 내부적으로 계속 들여다보고 있다"며 "자산 재조정(리밸런싱) 차원에서 적절한 방향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 <롯데百, 부실점포 대폭 정리 나선다> (매일경제, 2024.11.25.)
백화점을 계속 유지할 방법은 없을까? 물론 유통업계가 운영하는 곳이니 찾는 손님, 매출이 줄면 당연히 정리를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다양한 문화와 가치를 지역 시민과 나누는 공간이자 지역을 대표하는 랜드마크다. 팝업 스토어 유치, 기획 전시 등 문화 행사로 소통하며 변화에 맞서는만큼 백화점이 한 지역에서 어떤 상징으로 여기는지 운영하는 기업이 곰곰이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지역사회 및 대기업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차별화된 포인트를 살리려 노력하며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몰 형태로 진화하며 백화점과 엔터테인먼트 중심의 MD를 선보이고 있다. 백화점 자체를 하나의 지역 랜드마크로 만들어 유동인구를 늘리고 매출로 연결시킬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이다. 요즘 새로 짓는 백화점마다 가지고 있다는 멀티플렉스가 대표적인 사례이며 이외에도 자사의 대형마트, 패밀리 레스토랑 같은 고급 F&B, SPA 브랜드, 민자역사나 버스터미널 같은 대형 교통인프라, 공연장이나 컨벤션 홀, 놀이시설, 워터파크 등 일반 백화점들이 가져가지 못하는 MD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 안형준 <살아남은 중소 백화점의 생존전략③> (미디어 패션쇼, 2024.7.1.)
- MD(Merchandising) 상품 : 특정 브랜드가 시장 흐름을 파악해 내놓은 ‘특별기획 상품’ (어린이동아에 실린 기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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