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시의 관문인 강릉역과 강릉고속버스터미널 (본인 촬영)
나는 강릉시를 세 번 방문했다. 학창시절 단체 여행으로 오죽헌과 근처 박물관을 갔었는데, 강릉 사투리가 들어간 드라마를 본 탓인지, 어디서 왔는지 물으시는 어르신의 말에서 실제 사투리를 들을 수 있어 실감 났던 기억이 난다. 그 뒤로 가보지 못해 그저 강원도의 여러 지역과 마찬가지로 신비한 곳이라는 인상만 있었는데 2021년 10월과 올해 11월 초 강릉을 방문하면서 좋은 추억이 쌓이기 시작했다.
SNS 속 글을 정리하고, 찾으면서 무엇이 좋았는지 간단히 이야기하겠다. 그저 글 모음집으로 보이겠지만, 누군가에게 여행을 위한 단서가 될 테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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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산불 이후 나무가 심겨진 옥계면의 산들 (본인 촬영)
오토바이로 오고간 길
오토바이로 여행 중이라 길은 무지 험난했다. 2021년엔 춘천에서 홍천, 양양을 지났는데 험준한 산 속에서 포장된 도로를 달리는데 도중에 기름을 넣는 걸 깜빡해 아슬아슬하게 갔던 기억이 난다. 그때 지났던 고개가 말로만 듣던 한계령이었다. 엄청난 커브길과 구불구불 고개길을 넘던 모습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올해는 울진에서 삼척, 동해를 거쳐 갔는데 삼척에 들어서자 엄청난 비가 나를 반겨주었다. 거기다 7번 국도는 울진 북쪽~삼척 외곽 구간이 자동차 전용도로라 우회도로로 갈 수밖에 없었다. 비옷을 챙겨온 덕에 조심해서 달리긴 했지만, 해안을 낀 우회도로도 험준하긴 마찬가지였다. 가기 바빴던 탓에 제대로 바다구경도 못했다. 다행히 삼척시내에 들어서자 빗줄기는 줄어들었고, 무난하게 도착했지만, 흘러간 시간이 아쉬울 뿐이었다.
옥계
동해시를 지나 강릉시에 도착하면 먼저 반겨주는 게 옥계면이다. 전에 있던 산불로 곳곳이 불탔던 기억이 나는데, 민둥산 곳곳에 심겨진 나무들을 보니 반갑고, 상처가 아물고 있다는 생각에 희망이 느껴졌다. 시간이 지나면 저 나무들은 키가 자라고, 잎이 늘어나 다시 숲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때까지 산불이 일어나지 않길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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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의 경포 숙소와 2024년 11월, 시내에서 본 경포 호수 분수 설치 요구 현수막 (본인 촬영)
경포
두 번의 숙소 모두 호수와 동해 바다를 낀 경포 지역이었다. 시내에 잘 찾아보면 괜찮은 숙소가 있을 텐데 왜 검색하면 여기가 먼저 나올까? 그것도 저렴한 가격이라니… 방문했던 10~11월은 비수기라 그랬을 테고, 평소에 아름다운 호수와 바다를 볼 수 있다는 매력 때문에 숙소가 몰렸을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호수에 인공분수를 설치하자는 현수막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다만 반대하는 의견이 있는 만큼 무엇이 좋은지 잘 생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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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종합운동장 (본인 촬영)
4시쯤 도착한 강릉종합운동장에서
넓고 웅장했다. 트랙을 도는 몇 사람과 실내에서 춤을 배우는 사람들의 함성과 음악 소리가 멀리 보이고 들릴 정도였다. 종합운동장이니까 살짝 좁아도 될거라는 생각을 박살 냈다.
트랙 곳곳에 보이는 스탠딩 좌석을 보았다. 왼쪽에 하나, 위에 하나다. 관람 가능 인원을 늘리는 걸 넘어 더 가까이 경기를 보고 응원하라는 의도를 느꼈다. 그래서일까? 여기서 하는 경기를 보고 있으면, 온 마을 사람이 모여 즐기는 축제를 보는 느낌을 받는다. 치열한 승패마저 즐거워지는 공간, 강릉종합운동장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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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2 : 왕산면에 위치한 강릉커피박물관 겸 카페 / 사진 3,4 : 강문동에 위치한 커피커퍼(커피박물관 겸 카페) - 모두 같은 곳에서 운영한다. (본인 촬영)
강릉 커피커퍼(강릉커피박물관)
첫 방문은 숙소 근처가 본점임을 알지 못하고 왕산면에 있는 강릉커피박물관으로 갔다. 리모델링으로 카페만 가능하다는 게 아쉽지만, 주변에 둘러싸인 전시품으로 위안 삼을 수밖에 없었다.
그 아쉬움이 있어 두 번째 방문에서 본점을 찾아 커피 한 잔으로 곳곳을 둘러보았다. 한 건물에서 커피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차와 커피를 술 대신, 빵과 과자를 안주 대신 즐기는 나에게 커피는 일종의 낙이다. 커피에 책과 음악, 창이나 문 너머 바깥 풍경이 들어가면 하나의 낭만이랄까? 평소 일이 많아 제대로 즐기지 못한 것에 아쉬울 뿐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건강 관리가 중요해지고, 일도 바빠지면서 커피를 즐길 시간이 줄어들었지만, 가끔 쉬는 날에 카페에 들러 커피를 즐기니 마음이 편안해지고, 뭔가 쓰고 픈 마음이 든달까? 자유와 낭만의 삶 속에 함께하는 커피, 계속 즐겨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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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도호부대관아 (본인 촬영)
강릉도호부대관아
도심을 지나다 발견한 곳이라 마지막 날에 다시 찾았는데 잎이 붉고 노르스름해진 커다란 나무와 관아의 여러 건물이 주변 빌딩과 조화를 이룬다. 가을에 가볍게 산책하기 좋은 데다 복원된 건물들은 한국 전통의 미가 나름 살아있다. 도심 속 편안한 쉼터라 강릉 도심은 여길 떠올릴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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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진 풍경과 시간박물관 (본인 촬영)
정동진
일출 명소 중 하나로 새해 첫날만 되면 여기에 사람들이 몰린다. 드라마와 영화 촬영지인데다 인기 아이돌그룹 방탄소년단(BTS)도 뮤직비디오를 찍었던 곳이라 평일에 찾는 사람도 꽤 된다. 특히 모래시계는 이 곳의 대표적인 단어가 되어서 아예 한 해 마지막 날에 모래를 다시 돌리는 대형 모래시계까지 있을 정도다. 언덕 위 선박 형태의 호텔, 다양한 횟집, 곳곳에 있는 카페도 좋지만, 옛 기차 안에서 다양한 시계를 전시해둔 시간 박물관을 추천한다. 시계의 역사와 원리, 시대별 다양한 시계, 시계를 이용한 예술작품 등 보고 있으면 시간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볼 수 있다. 마지막에 전망대로 올라가면 볼 수 있는 바다 풍경은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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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2 : 강릉의 명물 짬뽕순두부 / 사진 3,4 : 버드나무 브루어리 / 사진 5 : 정남미제과의 구황작물빵 포스터 / 사진 6 : 강릉역 인근의 말나눔터공원
에필로그 (커피커퍼에서 쓴 글과 정동진에서 돌아가기 전 쓴 글을 정리)
커퍼박물관에 가니 강릉에 관한 각자의 글을 모아 책을 쓴다는 엽서를 발견했다. 한번 참여해볼까 싶어 썼는데, 가게가 문 닫을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 전에 얼른 쓰고 나가려 애썼는데 여러 미사여구를 넣었다.
7번 국도를 달리면 동해와 대관령을 마주하는 도시, 강릉이 보인다.
산과 바다로 고립되었다고 여기기 쉽지만, 산동네, 해안가 등 지역마다 개성이 풍부한 도시다. 커피, 맥주, 빵 등 먹을 거리가 넘치고, 경기장은 자신의 기량을 뽐내는 사람들과 응원하는 사람들로 문전성시다. 사람들은 솔직하면서 정이 넘친다. 넓은 마음과 억센 기운이 공존한달까? 그들이 만들어가는 강릉은 요즘 크리에이터, 청년 사업가 덕에 화려한 변신 중이다. 많은 사람을 끌어모으고, 재미를 사방에 퍼뜨리는 강릉, 꿀잼 도시들 가운데 으뜸이어라.
넉넉할 줄 알았던 강릉 방문기가 끝이 났다. 확실한 건 일상이라는 게 발목 잡지 않는다면 살기 좋은 도시다. 의미 있는 시간이었고, 거리는 꽤 되지만 다시 올 만한 도시라는 거다.
강릉시는 솔향, 바다향, 커피향, 당신의 향기가 있는 도시라는 걸 강조하던데, 스포츠 경기도 자주 열리고, 다양한 행사도 즐길 수 있으니 지역 균형 발전 차원에서 좀 더 자주 찾도록 여러 곳에서 노력했으면 좋겠다.
2025년 1월 1일, 강릉으로 갈 수 있는 기차가 열린다고 한다. 오토바이 장거리가 아닌 당일치기 방문이 될텐데, 많은 이가 강릉 명소에서 줄서고, 좋은 인상을 갖고 오갔음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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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2 : 강릉카페거리 앞에 보이는 동해바다 / 사진 3,4 : 정동진에서 보이는 동해바다 (본인 촬영)
보너스 - 그깟 바다가 뭐라고… (강릉커피거리에서)
내륙에서 나고 자라, 지금도 내륙에서 사는 나는 바다 볼 일이 많지 않다. 어릴 적에 바다구경을 가도 시큰둥했다. 바다를 보며 분위기라도 취할 수 있는 건 한 10년 좀 넘어서부터다.
돈의 여유가 붙어서 그런가? 감성도 표현력도 늘어난 건 아닌데 왜 그랬을까? 일자리를 얻으며 마음의 여유는 생겼는데, 누릴 수 있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삶도 점점 삭막해지니 뭐라도 채워보자는 생각이 컸던 모양이다.
때마침 넘실거리는 파도를 볼 수 있는 바다가 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저 너머 섬과 대륙도 볼 수 있다는 생각까지 들어가니 세상을 바라보는 눈도 커진달까? 물론 바다를 매일 마주하는 사람에게 공감이 안 될 수 있다. 좋다고 말하는 풍경도 매일 보면 지겨울 테니까...
돌아가면 파도 웹캠을 찾아 자주 틀어 놓아야겠다. 며칠 하면 지겨워짐을 알면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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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상(a.k.a. Blueman)
- 글쓰기 코칭 프로그램 <꿈꾸는 만년필> 5기
- 저서 : <마음을 쓰다> (2015, 교보문고 퍼플) 종이책 / eBook
꿈과 희망을 믿고 배우며 세상을 보려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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