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이어 쓰기>
#123. 무심코 던진 멸공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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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첫 글입니다.
새로운 해가 밝았지만 처음부터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좋은 영화 한 편 보고 관련 글을 찾아 소감과 버무리기로 결심했지만, 정작 쓸 게 떠오르지 않아 미룸이 지속되니까 엎어버렸습니다. 그 와중에 안 좋은 소식은 계속 터지고요.
이번 글은 다행히 쓸 거리 하나를 찾아 간단하게 생각을 담았습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의 '멸공'은 단순히 기업을 이끄는 오너의 한 마디가 평소 보인 행동에 불을 지핀 결과라고 가볍게 넘어가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단어 하나가 어떤 피해를 주는지 생각해보자는 뜻으로 적었습니다.
달갑지 않은 소식들로 한 해를 시작했지만, 서서히 나아지는 해로 기록되었으면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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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월, 신세계그룹 부회장 정용진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숙취해소제 사진과 ‘멸공’이라는 해시태그를 넣어 올렸는데 ‘신체적 폭력 및 선동’으로 커뮤니티 가이드라인을 어겼다며 삭제당했다. 나중에 시스템 오류라며 복구되었지만, 한동안 같은 해시태그를 넣어 항의하는 듯한 글을 올렸다. 1월 6일엔 <“소국이 감히 대국에…” 안하무인 中에 항의 한번 못해>라는 조선일보 기사 앞부분을 갈무리한 사진을 올리며 ‘#멸공, #승공통일, #반공방첩, #대한민국이여영원하라, #이것도지워라’라는 해시태그를 붙였다.
이 소식이 인터넷을 달구자 자신은 중국이 아니라 그 위에 있는 사람들을 향했다고 해명하며 위의 사진을 지우는 대신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사진을 올렸다.
“나의 #멸공 은 중국과는 아무런 상관이없습니다 나는 남의나라가 공산주의던 민주주의던 일말의 관심도 없는 사람이입니다 남의나라에 간다면 그쪽 체제와 그나라법을 준수할 뿐입니다 나의 멸공은 오로지 우리위에 사는 애들에 대한 멸공입니다 나랑 중국이랑 연결시키지 말기를 바랍니다 내가 그날 조선일보의 기사캡쳐하면서 중국의 지도자 얼굴이 살짝 비친 포스팅은(사실 그포스팅에 얼굴이 들어가 있는줄도 몰랐습니다) 대한민국을 소국으로 칭한것에대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반감 때문에 나온 반응이었습니다 아마도 나뿐만아니라 대부분의 대한민국 국민이 그렇게 생각할겁니다 대한민국은 소국이 아닙니다 우리를 소국이라 칭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다시한번 얘기하건데 난 남의나라에는 일말의 관심도 없습니다 다들 괜히 오해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나는개인이오” - 1월 7일 글
“멸공은 누구한테는 정치지만 나한테는 현실이다. 왜 코리아 디스카운팅을 당하는지 아는 사람들은 나한테 머라 그러지 못할거다. 사업가는 사업을 하고, 정치인은 정치를 하면 된다. 나는 사업가로서, 그리고 내가 사는 나라에 언제 미사일이 날아올지 모르는 불안한 매일을 맞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느끼는 당연한 마음을 얘기한거다. 내 일상의 언어가 정치로 이용될 수 있다는 것까지 계산하는 감, 내 갓 끈을 어디서 매야하는지 눈치 빠르게 알아야하는 센스가 사업가의 자질이라면... 함양할 것이다” - 1월 10일 글
윤석열 대선후보를 포함한 국민의힘 일부 정치인들은 SNS에 멸치와 콩을 산 사진을 올리며 ‘멸공’ 해시태그를 남기는 ‘멸공 챌린지’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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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우 성향 인터넷 매체인 가로세로연구소의 강용석 변호사, 김세의 대표가 라이브 방송에서 인천 SSG 랜더스 유니폼을 입고 스타벅스 텀블러를 올려놓으며 정용진을 옹호하고 불매운동을 조롱했다. 사진은 관련 라이브 방송 갈무리 화면
결과는 정용진과 신세계그룹에 불리하게 돌아갔다. 주가가 폭락하고 여당, 진보 성향 누리꾼과 시사평론가 등이 비판, 조롱한 데 이어 이마트, SSG닷컴 등을 불매하자는 운동이 일어났다. 특히 미국 본사가 가진 지분을 사서 운영하는 SCK코리아의 한국 스타벅스가 신세계에서 많은 매출을 올린다는 소식이 들리자 해당 매장은 큰 타격을 받았다.
1월 12일, 한국노총 전국이마트노동조합이 성명서로 ‘회사의 이미지에 타격을 주는 정 부회장의 언행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고 밝히자, 정용진은 다음날 관련 기사 갈무리 사진을 올리며 사과했다.
“나로 인해 동료와 고객이 한 명이라도 발길을 돌린다면 어떤 것도 정당성을 잃는다! 저의 자유로 상처받은 분이 있다면 전적으로 저의 부족함입니다.” - 1월 13일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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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건은 잘 나가는 사업가라도 SNS에 신중하지 못하면 위험을 똑같이 안고 감을 보여주었다. 그는 가로세로연구소, 국민의힘 의원들과 친분을 맺는 등 평소 정치 성향을 드러내면서 이미지를 생각하지 않은 행보를 보여줘 기업 이미지에 피해를 주었다.
공산주의를 박멸하자는 뜻의 ‘멸공’, 군가나 현대사에 볼법한 단어를 꺼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무런 생각 없이 했다면 어느 정도 욕먹겠지만, 알면서 대놓고 말했다면 더 큰 문제다. 그는 ‘우리 위에 있는 사람들'이라며 북한을 언급했지만, 해명하지 않았다면 사람들은 '중국도 공산주의니까 없애야 한다', '현 정부와 여당인 민주당은 북한, 중국에 관대하니까 공산주의다' 등 일종의 매카시즘으로 보았을 거다.
몇 년 전 극우주의자 집회에서 한 스님이 '빨갱이는 죽어도 돼'라 적힌 방패를 든 사진이 올라왔다.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에서 공산주의자라 불릴 사람이 얼마나 될지 한번 생각해보자. 현 체제의 모순과 문제를 비판하며 사회주의 속 요소를 말하거나 가져오자며 연구하는 사람들은 공산주의자인가? 북한에서 내려온 사람들은 무조건 남파간첩인가?
우리는 멸공이란 단어 아래 수많은 민간인이 남파간첩, 공산주의자, 친북주의자로 몰려 고문, 수감, 학살당했다. 독재 정부와 지지자는 자기 뜻에 따르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며 이 단어를 썼다. 지금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자백을 강요당하며 고통받았던 사람들과 가족들이 있다.
‘표현의 자유’는 권력과 기득권, 외국을 비판할 수 있지만, 남을 해칠 권리는 없다. 최소한의 상식과 윤리를 지켜야 보장받는다. 지금도 수많은 참사와 민주화운동 당시 강제 진압으로 피해를 본 이를 조롱하는 글이 자주 올라온다. 자신이 쓴 단어가 그들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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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마무리하고 나니 어울릴만한 기사가 있어 가져왔습니다. 국민의힘 정치인들의 '멸공 챌린지'때문에 분노가 쏟아졌다는 분의 이야기였습니다.
"'여수멸치'와 관련된 슬픈 이야기가 하나 있다. 여순항쟁 사건을 확인하기 위해 정부쪽 여러 사람이 여수와 순천으로 내려왔다. 그런데 시신을 보고 하나 같이 '시신이 멸치처럼 널려있다'라고 표현했다. 이런 상황에서 야당 대선 후보와 야당 정치인들이 '멸공'을 외치며 마트에서 우연히 집었다는 멸치가 '여수멸치'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여순사건 피해자 유족이자 현재 전북 전주에서 '여순항쟁 역사화전'을 진행 중인 박금만 화백은 10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최근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과 야당 정치인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멸공 릴레이'에 대해 분노를 쏟아냈다. - 기사 첫 부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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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금만 화백의 여순항쟁 역사화전 포스터(출처 : 전북도민일보)
여수와 순천에서 벌어진 사건 관련 특별법이 2001년부터 국회에서 발의됐지만 번번이 반대에 부딪혀 무산되다 2020년에 통과되었습니다. 피해자와 가족들은 오랫동안 '빨갱이'로 낙인찍혀 평범한 삶을 살지 못했죠. 이번 기회에 사건의 진상이 드러나고, 모두가 제대로 사실을 알길 기다리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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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상(a.k.a. Blueman)
- 글쓰기 코칭 프로그램 <꿈꾸는 만년필> 5기
- 저서 : <마음을 쓰다> (2015, 교보문고 퍼플) 종이책 / eBook
부족한데 자존심이 강하고 엉뚱한 사람 꿈과 희망을 믿고 배우며 세상을 보려는 사람 누군가에게 친근하고 도움이 되려는 사람
메일 : blueman1988@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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