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만평(그림 : 피델체)
2022년 7월 26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대한항공 비행기를 탔던 A씨와 자폐 스펙트럼이 있는 아들은 이륙 전 승객 안전을 이유로 비행기에서 내리라는 기장의 요구를 받았다. 대한항공은 A씨의 아들이 착석 요구 등 승무원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고 밝혔지만, 국내 항공사들이 자폐인에 대한 대응을 전혀 하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영국 국적기인 영국항공과 아일랜드 국적기인 에어링구스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 승객을 위한 별도의 시각 지침을 만들어 안내한다. (중략) 미국의 발달장애인 지원단체인 ‘아크(The Arc)’는 매년 미국 각지의 공항에서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 등에게 발권, 보안검색대 통과, 대기, 항공기 탑승 등 비행 연습을 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중략) 국외의 여러 공항에서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가 있는 사람 등을 위한 별도의 공간을 마련하는 것을 확대하는 추세다. 영국 개트윅·히드로·브리스톨 공항, 미국 애틀랜타·마이애미·피츠버그·포틀랜드 공항 등에서는 감각에 과민한 이들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기다릴 수 있도록 조용한 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 한겨레의 관련 기사에서
그리고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8월 2일 만평에서 ‘배제되는 것이 당연한 사회, 너무나 쉽게 장애인이 문제인 것처럼 몰아세우는 사회.... 단지 드라마가 아닌 현실에서 장애인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선 어떤 것을 우리가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지 고민할 때입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3달 전 서울 성동구와 인천 연수구에서 발달장애를 가진 자녀를 부모가 살해한 사건이 떠오르면서 마음이 무거워졌다.
나치 독일 부역자 한스 아스퍼거와 지금의 우리는 자폐인을 대하는 태도에 무엇이 다르다 말할 수 있을까? 지금도 자폐인, 발달장애인, 지적장애인 중 원하는 직업과 직장을 구하거나 의견을 존중받는 사람은 하늘의 별 따기다. 그나마 베어베터, 굿윌스토어(밀알복지재단)처럼 발달장애인을 직원으로 채용하는 곳이 생겼지만, 자폐인은 이마저 흔치 않다.
“자폐 스펙트럼이 있는 26세 아들의 어머니이자 2010년 ASTEP/Integrate를 설립한 Marcia Scheiner는 ‘자폐가 있는 사람들이 성인이 되는 과정에서 지원과 서비스가 정말로 감소하는 것을 보았습니다.’라고 말한다. ‘고용주의 사고방식과 운영방식을 이해하는 것과 직장에 엄청난 기술을 가져다주는 미개척 인재풀 사이의 격차를 메우고 싶었습니다.’” - <Most college grads with autism can't find jobs. This group is fixing that.> (Market Watch, 2017.4.10)에서(번역기 사용 후 수정)
“(유럽자폐인협의회의 서면의견서는) 전체 장애인과 비교해 자폐인 고용수준은 일반적으로 훨씬 낮았고, 고등교육 받은 사람 포함해 취업한 자폐인들 가운데는 파트타임 근로, 저소득, 사회수당 의존 등이 흔하다고 보고했다.” - 이원무 <유럽자폐인협의회가 전하는 자폐인 고용 현실> (에이블뉴스, 2021.6.10.)에서
“자폐 장애인이 경쟁 사회에서 살아가는 게 사실 쉽지 않다. 민간에서도 발달장애인 고용을 위해 노력하는 회사도 있지만, 아직 고용을 보장해주는 공공 일자리가 더 많이 필요하다. 중등교육, 고등교육을 받은 자폐성 장애인도 양과 질이 모두 보장된 일자리, 인간다운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일자리가 많아져야 한다.” - 성윤채 성인자폐성장애인자조모임 'estas' 총무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고용개발원의 <2021년 발달장애인 일과 삶 실태조사>에 따르면 취업자의 현재 직장(사업체) 근속기간은 ‘3~10년 미만’이 28.0%로 가장 많고, 평균 근속기간은 5년 9개월이다. 취업하기까지 겪은 어려움 중에서 ‘발달장애인을 채용하는 사업체 자체가 없거나 부족했음’(20.6%), ‘발달장애인 채용정보나 사업체의 특성 정보를 알기 어려웠음’(13.9%)이 있었다. 구직활동 시 겪은 어려움은 ‘발달장애인을 채용하려는 일자리(사업체) 자체가 없거나 부족함’(46.1%), ‘발달장애인 취업정보를 접하기가 어려움’(13.8%)이 있었다.
미디어와 당사자들의 단체는 자폐인의 인식을 좋게 만들어줄까? 영화 ‘레인맨’, ‘내 이름은 칸’, ‘증인’, 드라마 ‘별나도 괜찮아’,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등으로 많은 이에게 알려졌지만, 그들에게 천재적 감각이 있다는 환상과 여전히 소통이 안될 거라는 편견이 공존한다. 그들이 직접 참여하는 영화나 다큐멘터리조차 없고 자조단체도 ‘estas’, ‘세바다’ 둘 뿐이다. 발달장애인 당사자 운동을 펼치는 단체 ‘피플퍼스트’까지 포함해도 많지 않다. 그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당사자의 의견을 반영하려는 노력이 더 필요하다.
“대표적인 오해가 자폐성 장애인은 특정 분야에서 천재적인 두각을 나타낸다는 인식이죠. 영화에서 그렇게 묘사됐기 때문인데 그런 경우는 굉장히 드물고 대부분 많이 어렵습니다. 모든 장애가 힘들고 어렵지만, 자폐 장애는 특히 더 힘듭니다.” - 김용직 한국자폐인사랑협회장
최근 영국에서 자폐인과 비자폐인의 ‘직관적 사고’, ‘이성적 사고’ 능력이 비슷하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점점 비슷한 결과가 나오기 시작하면 자폐인을 대하는 인식이 지금보다 빠르게 좋아질 것이다. 그 전에 한번 생각해보자. 우리는 자폐인을 진정으로 이해하려 애써봤는가? 이 세상은 그들도 안전하게 살 수 있는 곳인가? 시대를 거듭하면서 여러 인권은 등장하는데 왜 자폐인은 아직인가?
4월 2일은 UN이 정한 ‘자폐인의 날’, 6월 18일은 당사자들이 정한 ‘자폐인 긍지의 날’이다. 그날 전후로 이들을 다룬 기사, 예술작품이 나오면서 우리의 관심을 유도하지만, 시간이 지나고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부정적인 기사와 의견이 덮어버린다. 자폐인들이 언제까지 ‘비자폐인들의 편견’이라는 무게를 짊어져야 할까?
나는 자폐인과 발달장애인이 원하는 직업과 직장을 갖고, 스스로 권리를 주장하는 게 문제 되지 않는 세상이라면 다른 소수자도 그리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성과 장애가 어떻든 존중하고 의견도 받아들여지는 세상은 모두가 바라는 ‘열린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당당히 사회에서 활동하는 모습을 만들어보자.
“지금까지 자폐에 관한 연구는 자폐인과 비자폐인의 차이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았다. 차이에 대해 알 필요는 있지만, 둘 사이의 심리적 동질성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 차이에만 집중하면 자폐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생길 뿐 아니라 자폐인 자신도 왜곡된 자아상에 갇히게 돼, 더는 특정 방식으로 사고하지 않거나 특정 직업을 회피하게 된다. 자폐가 있든 없든 사고방식은 비슷하므로, 교육이나 직업 현장에서 자폐를 이유로 한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 - 푸닛 샤 바스대 심리학과 교수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자폐는 비정상도 아니고 실패한 결과물도 아니다. 남들과 똑같이 열정적으로 꿈을 좇고 남들과 똑같이 사랑과 행복을 찾을 권리가 있다.” - 미국 플로리다 주의 첫 자폐인 변호사 헤일리 모스가 한국의 자폐인들에게 한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