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2 이용행태 조사, 2021 광고비조사
방송통신위원회의 2021 방송매체이용행태조사에 따르면 10~50대의 일상생활에서 필수적인 매체 1순위는 스마트폰이며, TV를 통한 방송 프로그램 시청시간은 조금씩 줄지만, OTT/유료방송 다시보기, 스마트 기기를 이용한 동영상 시청시간은 늘고 있다. 1인 가구가 점점 느는 상황에서 TV의 필요성 감소는 방송사 입장에서 안 좋은 점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의 2021 방송통신광고비조사에 따르면 방송 광고의 증가 폭은 크지 않지만, 온라인 광고는 나날이 상승 중이다. 그나마 2021년 지상파 방송사의 중간 광고 합법화로 비중이 올랐지만, 온라인보다 폭이 작다.
사람들이 이용하는 영상 콘텐츠 플랫폼이 다양해진 만큼, 방송사 입장에서 시청률, 다시보기 이용률, 광고 수익에 더 목매달 수밖에 없다.
“불행히도 프로듀서를 움직이는 것은 진실이나 정의가 아니요, 건강한 문화 의식도 아니다. 이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시청률이다. 프로듀서는 시청률 높이기를 요구하는 경영진의 성화에다 상업주의적인 프로그램을 요구하는 광고주의 압력에 저항도 해보지만 대부분 속수무책이다. 시청률을 잣대로 해서 제작된 프로그램은 한 번 방송하면 없어지는 하루살이가 대부분이다. 그런데도 전날 밤의 시청률 자료가 공개되면 한쪽에서는 가슴을 쓸어내고 안도의 한숨을 쉬고, 다른 한쪽에서는 자기가 만드는 프로그램이 없어지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프로듀서의 모습을 어디서나 볼 수 있다. 이들에게 창의성이니 비판성이니 하는 개념은 사치스럽다.” - 김승수 당시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PD들이 느끼는 시청률에 대한 압박은 우리들의 상상을 쉽게 초월해버린다. 매일 아침 성적표처럼 찍혀 나오는 시청률. 전국의 전체 시청자 수를 생각한다면 시청률은 터무니없이 적은 시청자들의 시청 기호를 숫자로 뽑아낸 것뿐이라고 무시하고도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PD들은 시청률이란 말만 들어도 머리에 피가 마르는 것 같다고 고백한다. 시청률이 안 나오면 위로 방송사 높은 분들께 욕먹고, 아래로 출연자들에게까지 무시당하기 때문이다. 시청률이 PD들의 ‘흥망성쇠’를 가름하는 유일한 잣대가 되고 있는 현실에서 이들이 시청률 지상주의라는 사지(死地)로 내몰리게 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귀결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 박웅진 한국콘텐츠진흥원 연구원
이러한 상황에서 창의성, 다양성 높은 TV 프로그램을 기대하는 건 무리다. 거기다 폐쇄적인 제작환경, 제작비 감소는 제작자를 궁지에 몰아넣는다.
“어떤 프로젝트를 결정할 때, (중략) 마지막 과정은 광고를 포함된 회의체에서 결정하는데 많은 사람의 의견을 받아들이면서 아이템의 선정 등이 매우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사업성, 시장성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 KBS 드라마 부문의 제작자
“제작비가 깎이면 판을 벌이기 힘든데 되게 심각한 것은 사실은 스태프 문제거든요. 방송국이 다 정직원으로 움직이지 않고 약간의 프리랜서, 프리 피디, 외부 카메라맨, 리서처를 쓸 때도 있죠. 돈이 줄면 그만큼 경력이 덜한 스태프가 와요. 그러면 프로그램 질은 또 떨어지고, 시청률이 안 나오는 악순환이 이어져요.” - MBC 교양 부문의 제작자
프로그램의 질은 쉽게 오르지 않고, 표절과 사건 사고가 가끔 벌어지니 시청자가 제작자를 불신하는 상황이 늘어났다.
“제작진은 ‘일본 프로그램을 본 적이 없다’거나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있냐’는 식으로 항변하고 있다. 하지만 시청자들의 입장은 곱지 않다. 일본 방송을 접한 시청자들은 ‘미디어 포커스’와의 인터뷰에서 “성우의 목소리 톤이나 자막이 흘러가는 속도, 위치 등이 상당히 유사하다”며 표절 의혹을 강하게 제기했다. 문화평론가 이명석은 방송에서 “분명히 베껴왔었고 지금도 계속 베끼고 있을 거라는 불신감이 크기 때문”이라며 제작진과 시청자간의 불신이 오래됐음을 지적했다.” - <예능프로 ‘표절논란’ 대책은 없나?> (TV리포트, 2007.5.7.)
“사람들이 카메라를 대하는 태도가 매우 부정적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촬영이나 인터뷰가 힘들어진 것도 있어요. 예전에는 협조를 구하면 좋은 마음으로 도와주시는 분들이 거의 90%인데, 요즘은 다 돈으로 해결하죠.” - SBS 교양편성 부문의 제작자
잘 나가는 남의 프로그램을 따라가야 시청률이 오르고, 수익도 많아질까? 한 가지 주제를 여러 방송사가 다루면 시청자가 질려한다는 사실을 제작자들도 안다. 하지만 그들을 둘러싼 환경이 바뀌지 않으면 표절 논란은 모습만 바뀐 채 계속된다.
방송계에 ‘창작자의 아이디어를 수용하는 환경’, ‘다양한 시선을 자유롭게 다룰 수 있는 환경’이 보장되어야 남의 것을 따라가지 않아도 재미있고 알찬 프로그램이 만들어진다. 지상파와 유료 방송 모두 오랫동안 다진 기반과 노하우가 충분하다. 하지만 앞서 말한 영상 콘텐츠 플랫폼의 다양화, 매출 감소와 인력 감축, 지나친 시청률 지상주의와 상업성 추구는 그들의 발목을 수시로 잡는다. 당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보다 시청률이 적더라도 오랫동안 꾸준히 살아남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
“모든 것이 겉으로 드러나는 수치로 평가되는 시청률 지상주의적 제작 관행은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고질로 자리 잡은 외모지상주의적 이데올로기의 끊임없는 재생산과도 깊게 연결돼 있다. (중략) 시청률은 프로그램을 평가하는 양적 잣대일 뿐이다. 하나의 프로그램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양과 질, 양 측면에서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 방송 시스템이 공익성을 우선으로 하는 공영방송 체제의 성격을 더 두드러지게 나타내고 있다는 점에서 질적 잣대로 프로그램을 평가하는 일을 포기해선 안 될 것이다.” - 박웅진 한국콘텐츠진흥원 연구원
“요즘 시대가 자꾸 그것(상업성과 공공성)을 분리해서 생각하는데, ‘상업적인 부분이 보편적이지 않다’, ‘보편적인 부분은 전혀 상업성이 없을 것이다’는 부분에 동의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1박 2일>이라는 프로그램을 자주 보는데 PPL도 받고, 어느 명소에서 협찬도 받고, 홍보도 해준다. 그런데 상업적으로만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이 가고 싶어 하는 곳을 소개해주면, 가족이나 친구한테 이야기한다.” - KBS 예능 부문의 제작자
프로그램의 질이 좋으면 시청률, 다시보기 조회 수는 자연스레 따라온다. 하다못해 부분 영상으로 만들어놔도 보는 사람이 늘어난다. 방송사들이 각자 잘하는 부분이 뭔지 생각하고 자유롭게 만들도록 도와주면 어떨까? 종합편성이든 장르별 전문이든 상관없다. 방송사들이 각자 가진 특성, 방향 등을 생각해서 프로그램을 만들고 편성하면, 광고주들도 거기에 따라온다. 그리고 콘텐츠가 중요한 시대이니 제작자에 대한 대우도 개선하자. 아이디어를 손쉽게 주고받는 환경이 되면 창의력 높은 프로그램은 계속 나온다.
노르웨이의 Nevion이 여러 나라 방송사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82%가 5G 등 셀룰러 네트워크가 지상파와 위성 같은 전통적인 방송 유통을 대체할 거라 말한다. 하지만 여전히 TV 방송은 모든 세대를 아우르고, 재미와 알찬 정보를 전달하는 점에서 가까운 미래에도 유효하다. 제작자 자신이 프로그램을 만들 때 영향을 받은 곳을 밝히는 등 여러 노력을 해야겠지만, 제작 환경을 개선하고, 안정된 인력과 비용을 확보한 뒤 시청률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만들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런 환경이 이어져야 TV 방송은 우리 곁에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