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이어 쓰기>
#140. 노동자가 천대받는 사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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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은 참 다사다난하네요.
10월 15일, 카카오의 서버가 있던 데이터센터에 불이 나 며칠간 카카오톡 등 관련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한 일, SPC에서 벌어진 노동자들의 사고, 강원도 춘천의 레고랜드로 채권이 부도난 일 등등 뉴스만 틀면 참 안 좋은 일 투성이였습니다. 덕분에 쓸 거리는 많았지만 하고 있는 일도 있는 지라 고르기 힘들었습니다.
다음달, 12월 그리고 내년은 일이 잘 풀릴까요? 좋은 소식이 들리길 기대합니다.
* 이번 글은 인용하는 기사가 많아 내용이 조금 깁니다. 기고하는 곳에도 올릴텐데 6페이지 이상은 거의 뒷 부분이 잘리더군요. 그 문제가 해결되면 좋겠네요.
* 주로 받을 이메일 주소는 카카오 쪽 메일을 쓰고 있었는데 이참에 등록해놓고 안 쓰는 거 하나로 바꿨습니다. 혹시 메일로 연락하실 일이 있으시면 그 쪽으로 연락부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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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부터 덕성여자대학교의 청소노동자들이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시위에 나섰다. 작년 10월,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와 서울의 대학, 빌딩 13개 사업장 내 16개 청소, 주차 용역업체는 집단 임금교섭을 가졌는데 '미화, 주차직 시급 400원 인상안'을 대부분 학교가 받아들였지만, 덕성여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더욱이 올해 1월에 김건희 총장이 부임하면서 방학마다 시행되던 2시간 단축근무에 청소노동자를 제외시켰고, 시위가 시작되자 학생, 교직원에게 나눠주던 마스크도 그들에게 주지 않았다. 김 총장은 지난달 28일 교내 구성원만 볼 수 있는 게시판에 이런 담화문을 남겼다.
“(노동자) 임금은 학생 등록금으로 충당된다. 대학이 재정적으로 어려운 만큼 학생의 교육환경 개선을 위해 예산을 써야 한다.”
“청소노동자 시급은 최저시급인 9천160원보다 230원이 많은 반면 교수·직원의 급여는 지난 10년간 동결됐다. 대학은 팬데믹 시기에도 근로조건을 보장했다.”
“대학에서 중간착취를 한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학내에서의 쟁의 행위는 구성원들에게 불편해 보이지 않을 수 없다. 법과 원칙으로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이다. ‘노동자는 약자’라는 프레임에 기대어, 대학 캠퍼스를 투쟁 구호판으로 만들고 억지 주장을 일삼는 불법행위가 더는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이 글이 나가자 박장준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 조직부장은 ‘교수 직원은 매년 호봉승급분이 있고 올해에는 특별상여금이 지급되기도 했다. 반면에 대학은 청소노동자 하루 노동시간을 8시간에서 7시간으로 낮춰 총 임금이 저하되는 안을 제시하기도 했다'며 반박했다.
반면 학교 측을 옹호하는 학생도 많아졌다. 특히 지부 덕성여대분회 소속 조합원들이 철야 농성과 파업에 이어 총장과 대화를 요구하며 대학본부를 점거하면서 그들을 비난하는 대자보와 온라인 글이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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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성여대에 붙은 대자보
“청소노동자의 임금인상을 거절하는 학교의 입장은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뿐입니다. 자원이 한정돼 있기 때문에 모두가 원하는 것을 이루기란 불가능합니다.”
“학생들을 인질로 삼으면서 학교를 위한다, 학생을 위한다 위선 떨지 말라. 우리는 인질이 아니다.”
물론 청소노동자를 지지하는 학생과 이 사건에 연대하려는 다른 학교도 있지만, '꿘충', '외부인의 연대에 동의할 수 없다'는 반박이 둘러쌌다.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노동자가 이들에게 욕심쟁이로 보이는 걸까?
“파업할 수밖에 없어 학생들 볼 때마다 안타깝지만 30년 동안 최저임금 수준으로 청소일 해온 우리 노동자들의 사정을 학생들이 알아줬으면 좋겠다. 부당한 일이 있으면 노동조합에 가입해 권리를 주장하고, 아픈 일이 있으면 참지 않고 도움을 청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 학생들이 함께 알아줬으면 한다.”- 덕성여대 청소노동자 윤경숙 씨
“평소 청소노동자분들의 파업을 지지했는데, 최근 혐오·비난 섞인 표현으로 관련 논의가 흐르는 게 안타깝다. 얼른 임금협상 타결이 이뤄졌으면 좋겠다.”- ㄱ씨(과학기술대학)
“자신도 최저를 받으면서 알바하는데 청소노동자가 최저 이상을 받으면 된다는 발언을 멈추십시오. 청소노동자의 노동은 알바가 아닌 생계 유지수단임을 기억하십시오. (중략) 여성이 주류인 직종은 전문직종이든 블루칼라 직종이든 끊임없이 임금/처우 부분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아왔습니다. 청소노동자의 수입은 각자 가정에서 주요한 수입원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 '덕성여대A'(@dukwooA)님
이런 얘기를 들으니 노동자를 천대하는 분위기가 여전함을 느낀다. 서울신문이 2019년 4월 10~23일 전국 중·고교생과 학교 밖 청소년 등 57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노동’이란 단어를 물었는데 대부분 ‘돈 벌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몸 쓰는 고된 일’이라는 답이 나왔다. 다들 돈을 벌어 부자가 되거나, 기업, 단체를 세우고 지도자가 될거라 말하지만, 한 직장의 노동자로 산다는 건 인생에서 거쳐가는 단계로 여길 뿐이다.
“힘든 경비아저씨를 위해서 아파트 주민들이 에어컨을 설치해줬다는 기사는 미담으로 소비되죠. 그런데 그 경비노동자들이 만약 노동조합을 결성해 에어컨 설치를 주장했다고 하면 상황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누군가에 의해 시혜적으로 베풀어지느냐, 아니면 본인들이 권리를 주장해서 쟁취하느냐에 따라 굉장히 다른 태도가 나타납니다.” - 이창근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정책기획실장
'반노동정서'는 한국의 국가주도 경제성장과 함께 존재했다. 남북 분단과 체제 경쟁으로 ‘반공주의’가 우세하면서 ‘노동자’, ‘노동’이라는 말은 1980년대 후반까지 입에 담지 못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기업들은 비정규직과 특수고용직을 주로 채용하였고, 노동조합도 대기업 중심으로 살아남으면서 ‘귀족노조’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노동자와 노동조합에 대한 부정적 반응이 늘었다.
현행 교과서도 ‘노동’ 대신 ‘근로’라는 말을 사용하며, 노동자의 집회, 결사 등을 부정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2021년 12월 8일에 열린 ‘2022 개정 교육과정 노동교육은 얼마나’ 토론회에 참석한 최덕현 교육노동자현장실천 부대표는 학교에서 쓰는 8개 출판사 11개 과목 교과서에서 ‘임금인상이 경제를 어렵게 한다고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인위적으로 임금을 올리면 경제상황과 노동자 모두에게 악영향을 끼친다고 부정적으로 서술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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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보고서에서 갈무리한 내용
코로나19의 세계적 유행으로 부동산 가격과 주식시장 상승, 암호화폐 등 가상자산 투자 급증으로 자산가치가 오르면서 노동의 가치도 낮아졌다. 우리금융그룹 우리금융경영연구소가 2021년 12월 6일에 발표한 <2021년 자산관리 고객 분석 보고서 - 팬데믹 시대의 대중부유층(Mass Affluent)>에 따르면 소득이나 부동산 자산이 감소한 사람들은 노동의 가치가 전보다 낮아졌다고 말했다. 그들은 자산가치나 생필품 가격이 노동 소득보다 높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물론 노동의 유연화, 워라밸, 파이어족 등으로 그 가치는 계속 하락했다. 일은 다양해지고 강도도 커지는데, 기업의 경영 안정을 이유로 일한 만큼의 대가를 받기 어려워졌고, 인공지능의 발전과 로봇의 등장으로 사람을 덜 쓰는 곳도 많아졌다. 노동자가 천대받는 사회, 이대로 괜찮을까?
다행히 2022년부터 앞에 말한 부동산, 주식, 가상자산의 가치가 하락하며 사람들이 은행 등 안정된 곳으로 몰리고 있고, 노동의 가치도 재조명해야 한다는 주장도 커지고 있다.
“요즘 청년들 사이에 ‘원화 채굴’이란 말이 유행하고 있다. 열심히 일해서 월급 받는 것을 의미한다. 땀 흘려 번 월급 300만 원이 ‘예금 12억 원’ ‘10억 원짜리 상가’와 맞먹는 수익률이라는 각성이 담긴 신조어이다. 2000년 전 사마천은 사기 화식열전에서 “근검절약만이 부자가 되는 바른길”이라고 했다. 근검절약과 저축이 자산 형성의 첫걸음인 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 김홍수 <원화 채굴> (조선일보, 2022.7.19.)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음)’로 부동산에 투자했다면 월급의 가치는 더욱 소중해진다. 빚을 내 집을 사는 건 역사적으로 내 집 마련의 ‘정석’이었다. 물려받은 자산이 있지 않은 한, 은행 신세를 지지 않고 집을 사기란 불가능한 게 대한민국 현실이다. 다만 최근 부동산 가격은 내림세인데 금리가 오르며 이자 부담이 만만치 않다. 이럴 때 이자를 갚아나가게 하는 원동력이 매월 들어오는 급여다.” - <노동 가치의 재발견…‘대박’ 대신 ‘따박’의 시대로> (매경이코노미 제2165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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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가치를 올리는 길은 개인의 노력만으로 불가능하다. 노동의 양극화, 노동자와 노동조합에 대한 부정적 반응, 기업과 정치권 등의 생각이 바뀌지 않으면 '노동자가 천대받는 사회'에서 '원화 채굴', '월급의 가치'는 무의미하다. 오랜 불황으로 사람들이 떠났던 한국의 조선업계가 최근 세계 선박 수주 물량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면서 호황을 누리지만, 사람을 구하지 못해 상대 회사에서 빼내오는 일이 벌어졌다. 인적 구조가 협력(하청) 업체 중심인데다 고강도 노동과 저임금이라 지원자가 부족하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8월 19일 국내 조선 3사에게 ‘생산인력 확충, 설계·엔니지어링 등 전문인력 양성, 외국인력 제도개선 등 인적 경쟁력 제고를 지원할 계획’이라 밝혔다. 고용노동부는 9월부터 해외 이주 노동자를 제조업과 조선업으로 확대하기 위해 전문인력 쿼터를 폐지하고, 내년에 법무부와 논의해 관련 비자에 조선업 쿼터를 신설한다고 말했다. 거기다 용접자격증을 보유한 모범수용자의 현장 투입을 검토한다는 기사가 나오자, 법무부가 사실무근이라 밝히기도 했다.
이를 두고 김종훈 울산 동구청장이 페이스북에 남긴 말이 의미심장하다.
“저임금 구조 유지 수단이 주된 목적이라면 조선업 위기는 다시 올 수밖에 없습니다. 조선소 인력난 해소 방법, 노동자들이 돌아올 길은 임금을 인상하고 처우를 개선하는 것뿐입니다.”
수출 중심으로 경제를 꾸려가던 옛날은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으로 만든 제품을 싸고, 많이 만드는 게 경쟁력이었다. 하지만 국내 1인당 소득이 3만이 된 지금은 이러한 논리가 통하지 않는다. 노동자가 안정적인 환경에서 일하며 충분한 임금과 복지, 주변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필요하면 의견을 당당히 낼 수 있는 사회를 만들지 못하면, 최근 한국 조선업계의 수주 호황과 구인난은 머지않아 산업 전반으로 이어질 것이다.
“모두 부자가 될 수는 없다마는 적어도 근면·성실한 인간이 희망을 잃지 않을 만큼의 부는 얻을 수 있어야 한다. ‘노동의 후한 보수는 인구 증가를 장려하면서 보통 사람의 근면을 증대시킨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1편 8장에 나오는 문구다. 불안하고 높은 리스크의 투자시장으로 사람들이 몰리고, 노동이 점점 소외되는 세상은 보통 사람이 성실히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다.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보상하고, 근면·성실로 살아갈 수 있는 세계를 지키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미래를 지키는 일이다.” - 박진웅 <노동의 가치> (경향신문, 2021.4.26.)
“인플레이션의 시대가 왔지만 임금 탓이 아니다. 오히려 힘들게 번 돈의 구매력이 떨어질 위험이 더 크다. 그러니 낮은 가능성을 옛 기억에 기대어 높이 평가한 뒤, 일하는 사람들에게만 유독 가혹한 정책을 펼치는 일은 없기 바란다. 삶의 개선이 힘들다면, 지금만큼이라도 살 수 있게 해주는 게 전 세계적으로 너 나 할 것 없이 좋다고 하는 ‘포용경제’의 첫걸음 아닌가.” - 이상헌 <인플레이션 시대의 노동과 노동의 가치> (한겨레, 2022.5.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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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꿘 - 1980~90년대 학생운동에 참여했던 사람이나 단체를 비하하는 말
* 반노동정서 : 노동 3권을 인정하지 않거나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것을 이기적이라고 보는 태도. 노동자들의 집단행동이 경제성장을 해치고, 사회에 혼란을 가져온다는 편견도 포함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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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 <청소노동자 울리는 덕성여대의 '차별,배제'> (매일노동뉴스, 2022.10.17.)
- <청소노동자 시급 인상 ‘회피’하는 덕성여대, 총장은 “구성원들 불편” 담화문···학교 비판 나선 학생들> (경향신문, 2022.10.18.)
- <시급 400원 인상 거부 덕성여대...”청소노동자 OUT” 혐오도> (한겨레, 2022.10.21.)
- 박장준 <‘완벽한 직무급제’ 덕성여대 청소노동자들의 생활임금 투쟁> (미디어오늘, 2022.10.24.)
- <노동자의 자기 혐오 ‘반노동 정서’의 근원은> (경향신문, 2020.5.10.)
- <“노동 아닌 근로” 현행 교과서의 노동혐오 서술> (매일노동뉴스, 2021.12.9.)
- <자산 거품 시대, 하락하는 '노동'의 가치> (뉴스로드, 2021.12.7.)
- <조선업 수주 호황에도 인력난에 울상> (매일일보, 2022.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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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상(a.k.a. Blueman)
- 글쓰기 코칭 프로그램 <꿈꾸는 만년필> 5기
- 저서 : <마음을 쓰다> (2015, 교보문고 퍼플) 종이책 / eBook
- <헬조선늬우스>에 자발적으로 기고중
꿈과 희망을 믿고 배우며 세상을 보려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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