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이어 쓰기>
#147. 쉬운 정보(Easy-read)가 필요한 이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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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에 보내드리는 칼럼입니다.
제가 일하던 가게가 2월 말부터 다시 연 뒤로 바쁜 나날을 보내는 중입니다. 준비, 손님 맞이 등이 쉴틈없이 이어지니 집에 들어오면 자기 바쁘고, 글쓰기와 관리할 시간을 내기 어렵습니다. 좀 더 일이 커지면 돈은 벌지만, 제 꿈을 키울 여유는 부족해질듯합니다. 하지만 적응해야죠. 좀 더 부지런히, 활발하게 여유를 찾아 꿈을 이어가려 합니다.
다가오는 봄처럼 활기찬 한 달 되셨으면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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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이 시작되자마자 쓴 글입니다.
여러모로 새로운 시작에 걸맞게 좋은 주제가 떠올라 써봤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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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중증 청각장애인 A씨는 강동구청이 낸 <2022년도 장애인일자리사업 모집공고>를 보고 일자리를 신청했다. 구청에서 수어 통역사를 보내 이틀간 면접을 보았지만 불합격하자 ‘면접에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같이 있던 경증 청각장애인만 합격했으니 차별이다’며 구청을 상대로 <2022년 장애인일자리사업 불합격 처분 취소소송(2021구합89381)>을 냈다.
2022년 12월 2일,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는 그 판결문을 작성했는데 평소 법률용어 등으로 딱딱하게 나오던 것과 달리 그림과 함께 쉽게 풀어쓴 문장이 담겼다.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안타깝지만 원고가 졌습니다.)"
"본 재판부는 원고의 요청과 장애인 권리협약 제13조 및 UN의 권고 의견에 근거해, 판결문의 엄밀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지 리드(Easy-Read) 방식'으로 최대한 쉽게 판결 이유를 작성하도록 노력했습니다."
이 소식을 여러 언론이 알리며 긍정적인 반응을 이어갔다.
"74년 한국 사법 역사상 처음 나온 '쉬운 판결문'이 화제다. 의미 있는 시도라는 긍정적 평가가 많지만, 사법부가 그동안 장애인을 비롯해 일반 시민의 판결문 읽을 권리를 보호하지 못한 현실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앞으로 법원이 모든 시민들의 '쉽게 판결문 읽을 권리' 보장을 위해 제도개선에 나서야 한다는 요구도 제기된다." - <'쉬운 판결문' 고민하던 판사가 넣은 그림 한 장> (오마이뉴스, 20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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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 정보"란?> (소소한소통, 2020.10.8.)
'쉬운 정보'는 전문 용어와 복잡한 어휘로 이뤄진 정보를 그림과 용어 설명, 간단한 표현으로 풀어썼다. 한국은 최근 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복지시설이나 일부 기관 등에서 쓰기 시작했지만, 미국 등 몇몇 나라는 오래전부터 법까지 나올 정도로 정착되어 있다.
영국의 크리시 메이어(Chrissie Maher)는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 공문서 속 말을 이해하지 못해 복지수단 신청서를 쓰지 못하는 일을 겪자 1971년에 쉬운 영어로 쓴 마을 신문 <튜브룩 뷰글 (Tuebrook Bugle)>을 창간하였다. 1979년에 <쉬운 영어 캠페인 (Plain English Campaign)> 이라는 사회운동을 시작하면서 영국 전역에 알려졌고, 언론과 정부의 긍정적인 반응을 얻으면서 공문서 등에 쉬운 정보가 도입되었다. 특히 2001년에 마련된 발달장애인 전략 백서 '밸류잉 피플'(Valuing People)은 공공기관에서 각종 서류를 만들 때 반드시 쉬운 정보 형태도 만들어 제공한다. 범용 디자인(누구나 쉽게 쓸 수 있는 제품이나 사용 환경을 만드는 디자인)도 이미지로 표지판을 만들고 글자는 쉽고 간단한 단어 위주로 쓴다.
미국은 1972년 리차드 닉슨 대통령이 '쉬운 말로 작성되는 연방 공보(Federal Register be written in layman's terms)'를 발표하였고, 1978년 지미 카터 대통령은 모든 규정을 쉬운 영어로 써야 하며, 그걸 따르는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행정명령 12044'에 서명했다. 시티은행은 1973년에 회수 불가능한 악성부채를 모으는 고객과 맞서는 소송에 대비해 쉬운 정보로 이뤄진 보험 증권을 도입하였다. 법학전문학교는 법률 작성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쉽고 명백한 영어를 쓰도록 가르쳤고, <1980년 문서 절감 법률 (Paperwork Reduction Act of 1980)>은 공문서를 쉬운 정보로 쓰도록 유도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새로 만드는 모든 문서와 개정 문서를 쉬운 언어로 써야 한다는 '2010년 쉬운 글쓰기 법'을 채택하였다. 쉬운 언어 행동 네트워크(PLAIN, Plain Language Action Network), 법률 언어 촉진 국제기구 '명료(Clarity)', 쉬운 언어 센터(The Center for Plain Language)는 공공, 민간 영역에서 쉬운 언어 사용을 독려한다.
일본의 공영방송 '일본방송협회(NHK)'는 <NEWS WEB EASY>를 통해 일본어를 공부하는 외국인, 어려운 일본어에 서툰 아이들을 위해 쉬운 정보로 된 최신 뉴스를 전달한다. 한자 위에 적힌 히라가나로 읽는 법을 켜거나 끄는 기능이 있고, 듣는 것에 자신이 있는 사람을 위해 '뉴스 듣기' 기능도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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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읽기쉬운자료개발센터 '알다'와 '소소한소통' 홈페이지 화면
* 해당 법률 제10조 1항 :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발달장애인의 권리와 의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법령과 각종 복지지원 등 중요한 정책정보를 발달장애인이 이해하기 쉬운 형태로 작성하여 배포하여야 한다."
"알다는 발달장애인의 '알권리' 를 위한 디딤돌이 되겠습니다."
* 읽기 쉬운 자료는 발달장애인이 선택하고 결정할 때 힘이 되는 디딤돌입니다. * '발달장애인법'은 발달장애인에게 중요한 정보를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 주도록 정해 놓았습니다. * 읽기 쉬운 자료개발 센터 알다는 발달장애인법에 따라 서울시의 지원을 받아 운영하는 센터입니다. * 알다는 발달장애인과 함께 읽기 쉬운 자료를 만듭니다. - 서울시 읽기쉬운자료개발센터 '알다' 소개
"소소한소통은 모두를 위한 쉬운 정보를 제공합니다. '쉬운 정보'는 발달장애인, 외국인, 학습장애 어린이, 어르신 등 말과 글을 이해하기 어려운 이들에게도 필요하지만, 우리 모두에게 편한 정보입니다. 일상의 소소한 순간까지 소통의 어려움이 없는 삶, '소소한소통'이 함께 합니다." - '소소한소통' 소개
이들은 코로나19 진단키트 사용법이나 돈 관리, 집안일 등 일상 생활에 필요한 정보부터 홍보물, 안내문 등 다양한 종류의 쉬운 정보 책자를 만든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열린 <시적 소장품>과 <그리드 아일랜드>는 소소한소통과 함께 기획 의도와 작품을 쉬운 정보로 같이 담았다.
"쉬운 글쓰기는 미술 글쓰기, 기획, 지식을 전달하는 활동에 큰 울림을 줍니다. 현대미술이 계속 고도화되면서 어떤 이론을 가져올 때 어려움을 낳는 경향도 있고, 또 어려운 이야기가 아닐지라도 처음 소개되는 내용이기 때문에 접근하기 쉽지 않을 수 있어요." - 김진주 서울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세마 코랄 기획, 편집
"쉬운 정보에 대해서는 단순히 '발달장애인에게 맞춰서 읽기 쉬운 글을 반드시 제공해라'보다는, '발달장애인 관람객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기존과 다른 정보 제공이 이루어질 수 있어요. 발달장애인들이 사회 안에서 함께 존재하며, 비장애인과 다른 특성이 있다는 걸 알기만 해도 지금과는 다른 시도를 해볼 수 있습니다." - 주명희 소소한소통 총괄본부장, 쉬운 정보 PM
하지만 구체적인 시행령이 없어 일부 지자체, 공공 기관, 복지 시설 등에서 쉬운 정보 제작 업체에 의뢰해 만들 뿐, 언론 보도나 정부 정책 등 다양한 곳에 필요한 '쉬운 정보'는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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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13일,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발달장애인 스마트폰 사기 개통 근절을 위한법제도 개선 토론회> 포스터와 참가자 사진 (출처 :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당사자들은 설명서도 없이 출시되는 스마트폰 사용법에 갈증을 느끼고 있었던 거죠. 각종 서류에 대한 불만도 엄청나게 컸어요. 고용공단 일자리 신청서, 은행 업무 서식, 직원 모집 공고문 등, 일상생활을 하려면 반드시 익숙해야 하는데 누구도 설명해 주지 않고 참고할 만한 쉬운 자료도 없어서 불편함을 갖게 되는 부분들이 너무 많았다는 거죠." - 백정연 소소한소통 대표, 주명희 소소한소통 총괄본부장, 쉬운 정보 PM
"인지의 어려움이 없는 사람도 요금제를 명확히 이해하기 매우 어려운데, 다수의 발달장애인이 피해자가 되고 있다. 발달장애인에 맞춘 정보제공자료가 전혀 없고 설명과정도 없는 과정에서 당사자가 복합적인 형태의 계약방식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일이다. 편의시설이 이동이나 시설접근에 어려움이 있는 모든 사람에게 편리한 시설물이 되어주듯, 발달장애인을 고려한 이해하기 쉬운 정보자료는 결국 여러 가지 상황으로 인지에 어려움이 있는 모든 사람의 일상에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주요한 편의 제공이 될 것이다." - 김성연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사무국장
'쉬운 정보'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꼭 필요하다. 지하철역 엘리베이터와 낮은 버스를 휠체어 타는 장애인뿐 아니라 몸이 불편한 어르신과 아픈 사람도 사용하듯이, '쉬운 정보'는 자폐인, 발달, 지적 장애인뿐 아니라 어린이와 긴 글을 읽기 힘들어하는 어르신, 언어의 기초를 배운 외국인도 도움을 받는다.
"쉬운 정보는 모두에게 통용될 수 없다는 한계도 존재하기에 쉬운 정보만 있으면 모든 정보 접근의 문제가 해결된다고 여겨지기보단 정보 취약계층을 지원할 수 있는 여러 방식 중 하나로 인정됐으면 한다." - 주명희 소소한소통 총괄본부장, 쉬운 정보 PM
"발달장애인지원센터를 통해 발달장애인의 필요한 정보를 파악해 쉬운 자료로 제작 배포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읽기 쉬운 문서 만들기 안내서 등을 만들어 정책 정보 제공 등에 활용하고 있다." - 백경순 복지부 장애인서비스과장
정보는 모든 이에게 열려있고 쉽게 알아들을 수 있어야 한다. 많은 이가 '쉬운 정보'의 확대를 바라고 있다. 일부 단체나 복지 시설뿐 아니라 민간 기업, 나아가 방송이나 언론 보도 등에서 적극 받아들이는 날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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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 <장애인 위해 쉽게 쓴 첫 판결문 나왔다> (법률신문, 2022.12.19.)
- <"쉬운 용어로 쓴 판결문, 장애인의 당연한 권리"> (법률신문, 2022.12.19.)
- 이건범 - <언어도 인권이다> (경향신문, 2013.2.28)
- <'사랑'은 '♥'입니다…차별 허무는 '쉬운 정보' 아시나요> (연합뉴스, 2022.8.8.)
- 누리집 <쉬운 우리말을 쓰자> 속 미국 사례
- 누리집 <쉬운 우리말을 쓰자> 속 영국 사례
- 와카바야시 리오 - <뉴스를 쉬운 일본어로 읽어 보자> (엑세스 일본유학, 2020.5.7.)
- <'쉬운 정보', 모두가 정보에 다가가는 날까지> (건대신문, 2022.8.30.)
- <미술(관)이 쉬운 글과 쉬운 정보를 시도할 때> (세마 코랄, 2022.7.7.)
- <쉬운 정보가 우리 모두의 소통을 열어줍니다> (함께걸음, 2019.3.11.)
- 이원무 - <직장생활에서 배운 알기 쉬운 정보의 중요성> (2016.3.25.)
- <'출금→돈 뽑기' 발달장애인 쉬운 말로 바꿔주세요> (에이블뉴스, 2023.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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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상(a.k.a. Blueman)
- 글쓰기 코칭 프로그램 <꿈꾸는 만년필> 5기
- 저서 : <마음을 쓰다> (2015, 교보문고 퍼플) 종이책 / eBook
- <헬조선늬우스>, 얼룩소에 자발적으로 기고중
꿈과 희망을 믿고 배우며 세상을 보려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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