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4학년 중간고사를 앞둔 2014년 5월의 어느 날, 길을 걷다 청소년들의 웃는 소리가 들리자 고개를 돌려 슬그머니 바라보았다. 학업의 스트레스를 게임이나 취미 생활 얘기로 풀고 있었다. 지나가던 청소년 커플도 즐겁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들 사이의 연애시기가 빨라졌다는 소식이 떠오르자 잘 지내라고 마음으로 빌었다. 어른들의 말과 학업 속에서 꿈을 찾아 방황했던 내가 그들을 부러워하다니… 세상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울부짖는 아버지, 어머니의 절규를 바라보며 눈물짓던 수많은 부모의 시선은 자연스레 내 아들과 딸에게로 향했다. 그들의 재잘거림이 그 어느 것과도 견줄 수 없는 축복의 메아리임을 알게 했다. 두 자녀를 둔 주부 박모(45·청주시 흥덕구 산남동)씨는 "교복을 입고 길을 가는 아이들만 봐도 가슴이 뭉클하다"며 "아이들이 건강한 모습으로 내 곁에 있는 것만으로 더는 바랄 게 없다"고 말했다.” - <"곁에 있어 고마워"…세월호 참사후 달라진 풍속도>(연합뉴스, 2014.4.27.)
세월호 참사 이후, 어른과 아이가 서로를 바라보는 시각이 훈훈해졌다는 기사를 보았다. 아이들은 지금처럼 상냥한 눈으로 자신들을 바라봐달라고 어른들에게 말한다.
"우리 아이들을 길에서 만나게 되면 평범한 고등학생처럼 대해주세요. 다른 아이들보다 더 많이 웃거나 울거나 하더라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아주세요“ - <"'저주받은 아이' 아냐... 평범하게 대해주세요">(오마이뉴스, 2014.6.24.)
어른이 된 나는 그들을 어떻게 바라봐야할까? 학창시절 나이를 먹으면서 바라보는 눈이 달라질 거라 생각했던 스스로가 우스웠다. 어른보다 주어진 게 적지만 나름의 목소리를 내는 아이들, 그들을 바라보며 그때를 그리워하는 어른들, 나는 어디에 서있는가? 학생일 때 어른이 되겠다고 기를 쓰고 기다렸는데, 막상 되고나니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우리 어른이 만든 이기심의 세계에서 서로를 짓밟거나 껴안으며 올라가고, 때로는 죽기도 하는 그들에게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그렇게 세상을 공부하다 3년이 지났다.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과 참사의 진실을 밝히자는 노란 리본이 전국 곳곳을 뒤덮었다.
“촛불집회에서 세상을 놀라게 했던 이들은 ‘교복 부대’였다. ‘이게 나라냐’며 모여든 시민들 사이에 꼭 교복 입은 청소년 무리가 섞여 있었다. 초등학생들은 자유 발언대에 올라 “내가 대통령이라도 이 정도는 아니겠다”라며 어른들을 웃기면서도 부끄럽게 만들었다. 평소 “공부나 하라”는 소리를 들으며 광장에서 밀려났던 청소년들이 어느새 광장의 동료가 되었다.” - 조영선 <청소년도 투표했다면 애초에 박근혜 당선은 없었을 것을> (시사iN 529호)
그날 전후로 많은 청소년 활동가, 활동을 했던 청년들과 SNS 친구를 맺었다. 소소한 인연이지만 그들의 앞날을 응원했던 건 청소년 시절 사회에 관심이 있어도 못 했던 걸 하는 게 부러웠지만, 우리 사회가 청소년을 포함한 많은 이의 참여로 더 나아가길 바라기 때문이다.
2016년 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드러나면서 첫 재벌 총수 구속과 대통령 파면이 이루어졌고, 사회의 불편한 점들을 개선하자는 여론도 확산되자 '18세 투표권'도 다시 떠올랐다. 당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자료(2016년 8월 기준)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 회원국 중 대한민국이 유일하게 19세부터 투표권이 주어졌고, 우리가 선진국이라 부르는 나라들은 18세 이하로 낮았다.
"청소년은 아직 생각이 미성숙해서 주변에 쉽게 넘어간다."
"투표권을 일찍 주면 교육 현장(학교, 학원)은 정치판에 휩쓸린다."
청소년에게 투표권을 주자는 의견에 일부 어르신이 답한 내용이다. 대한민국의 청소년(9~24세) 인구는 937만 8천명(2016년 통계청 「청소년 통계」 기준), 자라면서 알게 모르게 돌아가는 세상 소식과 어른들의 이야기를 듣는데 나름 생각하는 게 없을까? 때마침 이동관 당시 매일신문 편집부국장이 쓴 <2·28도시 대구와 18세 투표권> (매일신문, 2017.2.20.)에 공감을 느꼈다.
"2·28은 대구에 국한되지 않았다. 전국으로 확산됐고 결국 1960년 4월 민주혁명으로 완성됐다. 결국 대구 10대 고등학생들의 떨쳐 일어섬이 대한민국 역사의 물줄기를 바꿔놓은 것이다. 2009년 제정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법에서도 우리나라 민주화운동의 시발점을 2·28대구민주화운동이라고 규정하고 있는 이유다.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전 대통령은 물론 박근혜 대통령까지 “2·28민주운동이 우리 역사의 자랑스러운 의거이며 그날의 용기와 기백은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든 반석”이라고 평가했을 정도다."
"만 18세가 되려면 한참 멀었던 6·25 학도병들의 애국심은 어떻게 설명하려는가. 영웅 심리였을까. 또 2·28 당시 거리로 뛰쳐나갔던 만 18세가 안 되었던 학생들은 단지 일요일에 학교 오라는 게 싫었던 것일까. 아닐 것이다. 욱하는 심정도 아닐 것이며 치기의 발로 역시 아닐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광주학생운동이 있었고, 한국전쟁 때 참가한 학도병도 있었다. 당장 온라인 커뮤니티 중 정치 게시판만 가더라도 청소년 이용자의 글을 찾을 수 있고, 청소년들이 모여 사회운동을 한다.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은 ‘16세부터 교육감 선거권을 주자’고 말했는데 자신이 받을 교육의 방향을 정하는 교육감을 자기 손으로 뽑으면 충분한 연습이 될 거라 생각했다.
“만 18세를 넘은 고3 학생들에게도 선거권을 주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지난해 12월 2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로 인해 올해 4월 15일 제21대 총선에선 일부 고3 학생들이 투표에 참여한다.” - <만 18세 투표: '교복 입은 유권자가 온다'... 고3 투표권을 둘러싼 쟁점은?> (BBC News 코리아, 2020.1.22.)
“선거권 연령만 바뀌는 게 아니다. 정당 가입 연령을 만 16세까지 낮추자는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어섰다. 총선과 지방선거 피선거권 연령도 만 25세에서 만 18세로 낮추자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의결되면서 출마도 할 수 있다. 이젠 청소년이 정당 활동과 출마까지 가능해지면서 정치 영역에서 활발한 활동을 할 수 있게 됐다.” - <첫 참정권 행사 18세, 설레지만 책임감도 커> (경남도민일보, 2022.3.2.)
다행히 세상은 한발짝 나아갔다. 그들을 대변하는 목소리는 점점 커졌고, 대학생들의 정당 참여나 젊은 정치인의 등장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여전히 가야할 길이 멀다.
“경향신문 취재 결과 일부 고등학교들은 여전히 학생생활규정(학칙)을 통해 학생들의 정치활동을 금지하거나 이를 빌미로 퇴학까지 가능케 하고 있었다. 만 18세 청소년이 선거권을 얻은 2019년 이후 교육부와 각 시·도교육청이 관련 학칙 정비에 나서 많은 학교가 개정을 마쳤지만, 여전히 시대착오적 규정들이 곳곳에 남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교복입은 시민' 첫 대선인데, 지금 우리 학교는 "정치하면 퇴학"?> (경향신문, 2022.3.6.)
“지난해 1월 ‘18세 선거권 시대의 교육적 의의와 과제’ 포럼에서 경인교대 장준호 교수는 “정치 교육을 단기운전교습 정도로 생각하면 안 된다”며 “속성으로 불법과 합법, 투표방법은 알려줄 수 있지만 ‘자기 의견’의 형성을 가능하게 하는 시민역량은 단기간에 길러지지 않기에 초·중등 교육과정에서 장기간 체계적으로 시행될 수 있는 정치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 <’정치 교육’ 없는 청소년 투표, 의미 없어> (단비뉴스, 2021.12.20)
그들의 목소리가 미성숙하다는 사람들이 있지만, 스스로 판단하고 의견을 내도록 도와주는 교육을 하지 않는 상황에서 모순이라 본다. 입시에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어느정도 필수 교육으로 해두면 안될까?
우리는 여러 사람과 함께 사회를 구성하고, 정치에 참여한다. 청소년도 일원으로 의무과 권리를 배우고 수행하며 누린다. 비록 생각이 부족해도 경험을 통해 나은 생각을 만들 수 있다. 다 같은 시민이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