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늬 칼럼>
자폐인이 함께 어울릴 수 있길 바라며 - 별이와 쥴리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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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쑥스럽지만 밝히고자 한다. 나는 자폐 스펙트럼 청년(자폐인)이다. 어렸을 적, 말하는 법은 물론 세상을 알아가는 과정이 느렸다. 주로 TV, 라디오, 책 등으로 세상을 배웠고, 또래나 동생들과 잘 어울리지 못해, 괴롭힘이나 무시를 당했다. 계산이 힘들어 학창시절 거의 수학 포기자로 지냈고, 일자리를 구하는 것도 제한적이었다. 본업으로 치킨집에서 담당자로 일하지만, 가끔 실수하거나,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손발이 맞지 않을 때 비자폐인보다 피로와 스트레스를 많이 겪는다. 하지만 사회로 나갈 수 있게 여러 면에서 도와주신 부모님과 주변 분들 덕에 자립하고, 어려웠던 본업을 조금씩 배워내가며 틈틈이 바라본 세상을 글로 담고 있다.
요즘 자폐인을 다룬 TV 프로그램이나 영화가 나올 때 주의를 기울인다. 그전부터 있었지만, 정보와 이해도가 부족했던 때라 주로 보호자 없이 아무것도 못 하는 중증 장애나 지적 장애, 다운 증후군과 겹쳐 나왔다. 자폐인이 적극적이고, 자립하려는 모습을 보이는 작품이 나오기 시작한 건 2010년대부터다.
2022년 ‘장애인의 날’ 특집 드라마 ‘너만의 거리에서, 우리는’에서 주인공인 강승모(이정준 분)가 연기하는 자폐인이 가끔 어색하고, 누군가의 비난에 스트레스를 느끼는 부분이 과장되는 등 지나치게 묘사되었다고 비판했고,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3화에 나온 자폐인 김정훈(문상훈 분)의 형 살인혐의 재판과 자폐인 자녀의 비행기 탑승 금지를 다루며 ‘자폐인이 살기 힘든 세상’을 말했다.
나는 이 드라마를 보다 승모의 말과 행동에 뭔지 모를 불쾌함을 느꼈다. 점점 익숙해졌지만, 말투와 표정 등이 당사자를 억지로 따라 한다는 느낌이 들었고, 잠깐 아역 배우가 나온 장면은 같은 배역이 맞나 싶을 정도로 말투가 평범했다. 특히 낙엽청소를 나갔던 승모가 공원에서 그림을 그리던 중, 아이가 청소기를 들고 장난치다 넘어져서 손바닥에 피가 날 때 보여준 이상한 효과와 그가 아이의 울음소리에 무서워하며 머리를 치는 모습이 겹치는 장면에 눈을 찌푸렸다. 굳이 이런 장면을 집어넣어 당사자에 대한 편견을 만드나 싶다. - <장애인/신경다양인이 참여하는 영화, 드라마를 보고 싶다>에서
최근 영국에서 자폐인과 비자폐인의 ‘직관적 사고’, ‘이성적 사고’ 능력이 비슷하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점점 비슷한 결과가 나오기 시작하면 자폐인을 대하는 인식이 지금보다 빠르게 좋아질 것이다. 그 전에 한번 생각해보자. 우리는 자폐인을 진정으로 이해하려 애써봤는가? 이 세상은 그들도 안전하게 살 수 있는 곳인가? 시대를 거듭하면서 여러 인권은 등장하는데 왜 자폐인은 아직인가? - <자폐인은 이 세상에 필요없는 존재가 아니다>에서
여전히 자폐인을 다룬 뉴스와 사람들의 의견은 나아지지 않는다. 오히려 여러 사람이 자극적인 내용만 따와 퍼 나를 뿐이다. 웹툰작가이자 인터넷 방송인인 주호민이 자폐인 자녀가 학교에서 특수교사에게 안 좋은 소리를 들었다며 소송을 했다는 소식이라든지, 자폐를 ‘왕의 DNA’로 여기며 이상한 교육을 시켰다는 소식까지… 각자도생이 미덕인 이 세상에서 자폐인을 제대로 인식하는 날은 언제 올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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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캐릭터 <별이> 소개 (딩동댕 유치원 누리집)
이와중에 2023년 8월 18일, EBS 1TV <딩동댕 유치원>에 처음 출연한 자폐인 캐릭터 ‘별이’가 화제가 되었다. 2022년 5월부터 다문화가정 아이, 이혼한 부모님 대신 할아버지, 할머니가 키우는 아이, 휠체어를 타는 아이, 태권도와 달리기를 좋아하는 여자아이 등 다양한 사연을 가진 아이들과 유기견, 고양이가 함께 노는 ‘딩동댕 마을’로 평일 아침(본방송)과 오후(재방송)에 시청자를 반긴다.
“장애인과 다문화, 양성평등 등을 대표하는 캐릭터들을 넣어 편견을 깨고 싶었다. 이들은 위로의 대상이 아니고, 고정된 성 역할은 없다는 걸 아이들은 물론 부모들도 알기를 바랐다.” - 이지현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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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송송해?> 에피소드 16 ‘안녕 별아?’ (2023.8.18.)
별이는 자동차를 가지고 놀길 좋아한다. 거기에 푹 빠져서 누군가 인사해도 딩동샘이 불러줄 때까지 쳐다보지 않는다. 자신을 보지 않는 별이에게 아쉬움을 느끼는 아이들에게 강아지 댕구와 딩동샘은 왜 그런지 친절하게 설명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 공감하기 시작한 아이들은 별이에게 다가갔고, 딩동샘의 도움을 받은 별이도 아이들과 함께 논다. 자동차 종류를 모두 아는 별이는 아이들에게 하나씩 이름을 말해준다. 아이들도 이런 자동차가 있다는 걸 깨달으며 즐거워한다. 그러다 별이는 갑자기 들리는 경적소리에 매우 놀란다. 무서워하며 울음을 터뜨리는 별이를 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자폐인은 큰 소리, 이상한 냄새, 강한 빛 등에 예민한데, 어릴 적 어둠 속에서 빛과 소리에 무서움을 느꼈던 모습, 지금 일을 하면서 손님이나 같이 일하는 사람들의 큰 목소리와 웅성거리는 분위기에 적응하려다 스트레스를 느낀 모습 등이 겹쳤기 때문이다. 거기다 별이의 행동 하나하나가 학창시절 학원이나 시설 등에서 도와주던 중증 자폐, 지적, 발달장애 아동과 비슷했다. 딩동샘이 별이의 특징을 노래로 쉽게 이야기해주고, 무서워하는 별이를 함께 달래주는 모습에 공감과 고마움을 느꼈다.
마지막에 나온 음악은 발달장애 예술가 4명이 만든 그림책 <상자 쓴 아이>를 노래와 영상으로 만들었다. 잔잔한 멜로디와 별이 역할을 맡은 성우의 목소리는 편안함과 감동을 전해주었다. 공감과 위로가 저절로 된달까?
이미 본 사람들의 반응도 긍정적이었다. 1년 전부터 하나둘 등장한 아이들도 같은 사연을 가진 아이의 부모들이 고맙다고 반응을 남겼는데, 별이도 마찬가지였다.
“느린 아이를 키우고 딩동댕유치원을 자주 보는 엄마입니다. 오늘 아침 별이를 보며 내내 눈물 흘렸습니다 내 아이가 TV 속에 나온 것 같아서 반갑고 아프고 또 즐거웠습니다. 별이를 만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회 속에서 늘 외톨이처럼 혼자 떠다니는 우리 아이를 많이 분들이 알아봐 주는 계기가 될 것 같아요 너무 너무 감사합니다.” - 시청자 곽*아
“7살 아들은 자폐스펙트럼장애를 갖고 있습니다. 통합교육을 받고 있고, 아이의 유치원 생활과 유치원 친구들이 아이를 이해하는 과정? 방법? 들이 많이 궁금했지요… 당장 친구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언제나 궁금했고, 저도 제 주변인과 주변인의 자녀들을 만나는 일이 생기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잘 몰랐거든요. 아이의 세상을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수많은 책을 보며 아이를 이해한다 생각했는데… 또 그 이해하저 아이가 표현하지 않는다고, 제 방식대로 이해했던 것 같아서 저 또한 갇혀있다는 반성을 했습니다. (중략) 장애인식교육처럼 등장하는 게스트가 아니라 별이가 딩동댕유치원에 등장해서 함께 생활한다니 더없이 기쁘고, 반갑고, 궁금하고, 설레입니다.” - 시청자 신*라
별이가 등장하기 전부터 언론도 관심을 보였지만, 제작진은 오히려 누리집에 남긴 입장문에서 더 자세한 배경을 설명하지 못해 죄송하다고 밝혔다.
‘별이’가 등장하는 첫 편에서는 상호 간 딩동댕 마을의 구성원이라는 전제 아래 ‘별이’와 기존 캐릭터들과의 첫 만남을 갖고, 이후 에피소드를 통해서 <딩동댕 유치원>에서 함께 놀고 배우고 어우러지는 과정을 보여주는 구성을 전개하고자 했고, 이에 따라 이미 후속편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이 과정 역시 ‘딩동댕 유치원’의 현장 자문 등 심사숙고의 과정이 있었습니다.)
앞으로 방송될 에피소드에서 ‘별이’는 <딩동댕 유치원>에서 아이들과 함께 더불어 이야기를 듣고, 더불어 배움을 즐기는 구성원으로 등장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도자료를 통해 ‘별이’의 배경을 소개하는 과정에서 더 자세한 배경 설명에 소홀해 시청자 여러분에게 심려를 끼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딩동댕 유치원>은 더욱 세심하게 여러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겠습니다. - <8월 18일 방송 예정 〈안녕 별아〉 보도 기사에 대한 제작진의 입장문입니다.> (2023.8.15.)
첫 등장이지만 아이들에게 자폐인을 알려주고, 쉽게 다가가려는 노력이 고마웠다. 다음 편에 별이가 아이들과 어떻게 어울리며 배워나갈지 기대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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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same Street Season 47 Episode 15 <Meet Julia> (2017.4.10.)
내용은 앞서 나온 별이와 비슷했지만, 미국이라 그런지 직접적인 언급이 강렬하게 다가왔다. 빅버드(Big Bird)가 그림을 그리는 줄리아에게 다가가 인사했지만 답을 듣지 못하자, 앨런(Alan)에게 그가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며 섭섭함을 표현했다.
Big Bird : I don’t think Julia likes me very much.
(줄리아가 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요.)
Alan : Oh, no. You two are just meeting for the first time.
(아니야. 너희 둘은 그냥 처음 만나는 거야.)
Big Bird : Oh, So she’s shy. Oh, I get that. I can feel shy sometimes, too.
(그래서 그녀는 수줍음을 타는구나. 이해해요. 저도 가끔은 수줍음을 느껴요.)
Alan : Well, with Julia, it’s not just that. You see, she has autism. She likes it when people know that.
(줄리아는 그것만이 아니야, 네가 보다시피, 그녀는 자폐를 가지고 있어. 그녀는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아는 걸 좋아해.)
Big Bird : Autism? What’s autism?
(자폐? 자폐가 뭔가요?)
Alan : Well, for Julia, it means that she might not answer you right away.
(줄리아가 너에게 바로 대답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이야.)
(애비(Abby)가 줄리아는 많은 말을 하지 않는다고 말하자)
And she may not do what you expect, like give you a high five.
(그리고 그녀는 너에게 하이파이브를 하는 등 기대하는 것을 하지 않을 수 있어.)
애비와 엘모(Elmo)가 그저 줄리아의 방식이 조금 다를 뿐이라 말하자 빅 버드도 그를 이해하기로 마음먹고 함께 어울린다.
웃는 것과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줄리아가 처음 나왔을 때 미국에서 좋은 반응이 많았지만, 스펙트럼이 넓은 자폐가 한 가지 이미지로 굳어진다는 우려도 있었다. 이를 인식한 제작진은 줄리아를 등장시키기에 앞서 수년간 당사자와 가족을 만나고 연구했다고 밝혔다. 심지어 줄리아를 연기하는 스테이시 고든(Stacey Gordon)은 2010년 자폐 진단을 받은 아들을 두고 있는 재활 전문가다.
She uses her personal experiences as a habilitation specialist and mom to bring Julia to life in an authentic, respectful, and loving way.
(그녀는 재활 전문가이자 엄마로서의 개인적인 경험을 활용하여 진실되고 존중하며 사랑이 넘치는 방식으로 Julia에게 생명을 불어넣습니다.) - 세서미 워크숍 누리집 내 소개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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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자폐 아동과 언니, 어머니가 출연한 <A Sibling Story> (Sesame Workshop, 2015. 10. 21.)
No matter our differences, we all want to feel like we belong. As we celebrate #AutismAcceptanceMonth, join Julia and her friends in a brand new storybook as they show how keeping an open heart and open ears helps everyone to know they belong
(우리의 차이점과 관계없이 우리 모두는 소속감을 느끼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AutismAcceptanceMonth 를 축하하는 동안, 열린 마음과 열린 귀를 유지하는 것이 모든 사람이 자신이 소속되어 있다는 것을 아는데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 보여주는 새로운 이야기책에서 Julia와 그녀의 친구들과 함께하세요.) - Sesame Street 공식 X 계정(2023.4.29.)
별이와 줄리아는 각각 한국과 미국의 아이들에게 자폐인의 존재를 쉽게 알려주고, 친하게 지낼 수 있게 도와주는 캐릭터다. 등장 당시 긍정적 반응이 많아 여러 나라의 유아 프로그램에서 참고할만한 모델이 되리라 본다. 나아가 현실 속 자폐인에 대한 인식을 긍정적으로 바꾸고, 스스로 세상에 나오도록 도울 방법을 찾는다면 삭막했던 이 세상은 조금씩 나아질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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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상(a.k.a. Blueman)
- 글쓰기 코칭 프로그램 <꿈꾸는 만년필> 5기
- 저서 : <마음을 쓰다> (2015, 교보문고 퍼플) 종이책 / eBook
- <헬조선 늬우스>, <얼룩소>에 자발적으로 글을 써서 올리는 중
꿈과 희망을 믿고 배우며 세상을 보려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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